조은책소개

독서의 기술

현범랑 2021. 12. 2.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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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하는 여인

저는 독서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입니다. 책읽기가 절대 쉬운 도전 분야는 아니지만 지성의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욕심이 있다면, 또 책읽기로 인생의 변화와 성공에 도전하고 싶다면 책읽는 방법에 대해서 먼져 배워야 할 것입니다.

물론 책 읽기가 쉽게 되시는 분들은 다독을 통해서 스스로 터득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게 쉽지 않은게 사실입니다.

 

시중에 독서에 대한 책은 정말 많습니다. 서점에서 초보자들이 쉽게 접할수 있는 책들을 골라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오늘은 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이라는 책에 대해 적어보려고 합니다.

아래 글은 책의 내용 중 몇부분을 적어 보았습니다.

 

 

 

"독서에 대해...

 

 워낙 책과 더불어 성장한 사람이라면 모를까, 누구나 약간은 교육과 지도는 필요하겠다.

그러나 항상 그렇듯이 중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의지이며 완전무결한 판단이 아닌 수용성과 진솔함, 선입견 없는 마음자세이다.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도달할 수 있는 일정한 수준에서 보면 예술과 학문 영역의 경계는 허물어진다.

 

 책속에 담긴 모든 시대의 작가들의 사고와 본질은 결코 죽은 것이 아닌 살아 움직이는 유기적 세계다.

 

 다시 번 강조하지만, 독자가 꼭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편견이나 선입견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헤르만 헤세는 독서의 세가지 유형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독서의 세가지 유형

 

1. 먼저 순진한 독자

 마치 음식을 먹듯이 책을 대하는 독자로, 배불리 먹고 마시듯 그대로 받아들인다.

인디언이야기 책에 빠지는 소년, 공주소설을 읽는 하녀, 소펜하우어에 탐닉하는 대학생 등이 모두 그러하다.

마치 말과 마부의 관계와 같다. 즉 책은 이끌고 독자는 따라가는 것이다.

책의 소재는 있는 그대로 수용되고 객관적 실제로 받아들여진다. 마치 빵은 먹으라고 있는 것이고,

침대는 잠자라고 있듯이 말이다.

 

그리고 작가의 파동을 함께 타고 그의 세계관에 온전히 동화되며,

작가가 자기 인물들에 부여한 해석 일체를 가감 없이 수용한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다.

 

소박한 독자들이 소재나 배경이나 줄거리 쪽이라면 이들 교양계층 독자들은

예술성, 언어, 작가의 소양과 정신성 등에 치중한다 뿐,

이런 것들을 객관시하여 문학작품 최고 최종의 가치로 받아들인다.

 

2. 두 번째, 세상 모든 것들에 대해서 그렇듯이, 책에 대해서도 전혀 다른 입장을 취할 수가 있다.

우리가 교양이 아닌 본성을 따르기로 하면, 곧바로 어린아이가 되어 사물을 갖고 유희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면 빵을 산이라 하여 터널을 뚫을 수도 있고, 침대는 동굴도 되고, 정원도 되고, 설원이 되기도 한다.

바로 이러한 유희본능을 보여주는 경우가 둘째 유형의 독자들이다.

 

이들은 어떤 책이 지닌 가장 중요하고 독특한 가치를 뽑을 때 책의 소재나 형식 따위는 전혀 문제 삼지 않는다.

무엇이든 열 가지 백 가지의 의미를 가질 수 있음을 어린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듯이, 이 독자들 역시 그러하다.

 

둘째 유형의 독자는 마부를 따르는 말이 아니라 마치 사냥꾼이 짐승의 자취를 더듬듯 작가를 추적한다.

그러다가 불현듯 작가의 자유처럼 보이는 것의 이면(異面), 즉 작가의 강박관념과 수동성을 들여다보게 되면 그 순간,

탁월한 기교와 세련된 언어예술이 보여주는 그 어떤 매력들보다도 훨씬 더 강하게 매료된다.

 

3. 세 번째, (주의: 사람들을 세 유형 중 어느 한 부류로 반드시 분류할 필요는 없다.

누구나 오늘은 둘째 유형에, 내일은 셋째 유형에 속했다가 모레는 다시 첫째 유형에 속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언뜻 보면 이것은 통상 말하는 ‘훌륭한’ 독자와 정반대 모습이다.

이 유형의 독자는 너무나 개성적이고 자신에게 충실해서, 무엇을 읽든 완전히 자유로운 태도로 대한다.

그가 책을 읽는 이유는 교양을 쌓기 위함도, 재미를 얻기 위함도 아니다.

 

어찌 보면 완전히 어린아이같이 그는 모든 것과 더불어 유희하는데,

어떤 관점에서 보면 모든 것과 더불어 유희하는 것이야말로 더없이 생산적이고 창조적이다.

이러한 독자는 어떤 책에 나온 멋진 구절이나 지혜와 진실이 담긴 말을 보면, 시험 삼아 한 번쯤 뒤집어본다.

모든 진리는 역도 참임을 이미 터득한 사람이다.

모든 정신적 입장이란 하나의 극(極)이며, 거기에는 등가의 반대극이 항상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다.

 

연상적 사고를 높이 쳐준다는 점에서 어린아이와 똑같지만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다.

그리하여 이런 독자는 소설이건 문법책이건, 하다못해 열차시각표나 인쇄소의 활자견본에서조차 원하는 것을 읽어낼 줄 아는 것이다.

상상력과 연상능력이 최고조에 이를 때 우리는 종이 위에 인쇄된 것을 읽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읽는 것을 타고 떠오르는 충동과 영감의 물결 속을 헤엄쳐 다니게 된다.

 

신문에 실린 광고 하나가 천계(天啓)가 될 수도 있다. 단어 하나를 뒤집어보고,

마치 퍼즐 맞추듯 그 철자들을 갖고 유희하던 중에 너무나도 행복하고 아주 그럴듯한 생각이 떠오를 수 있는 것이다.

 

셋째 단계의 독자는 더 이상 독자가 아니다. 만약 지속적으로 이 단계에만 머무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곧 아예 아무것도 읽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독서하는 사람이 아니다.

유명한 작가들이 없어도 아쉬울 것이 없다.

온 세계가 자기 내면에 들어와 있는데 무엇 때문에 책을 읽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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