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책소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현범랑 2021. 12. 28.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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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트예프스키

러시아의 문학가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톨스토이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러시아 문학가는 도스토예프스키입니다.

20대 후반까지 책하고 담쌓고 살았던 인생을 문학과 지성의 세계로 인도한 장본인입니다. 

정말 도스트예프스키는 시대를 앞서간 천재라고 말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의 작품을 다 좋아하지만 그중에 한권을 고르라면 오늘 소개한 책 -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꼽을 겁니다.

 

이 책은 종교와 인생, 사상, 역사 등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다 이야기 하자면 밤을 새야 할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그 중 한가지만 이야기 하겠습니다.

내용의 핵심은 아버지를 죽인 사건 입니다. 친부살해 이지요. 친부살해는 햄릿에서도 잠깐 이야기 했었습니다.

자식이 아버지를 죽였는데,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배후의 사상을 봐야 합니다.

'모든 것이 허용 된다' 라는 논리로 교살의 근거를 주는데요,

이 말을 한 뒤에 아주 작은 혼잣말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신이 없다면......'

​그런데 지금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친부살해에 대해서 역사를 그리고 문학사를 이야기하면서 전개해 나가고 싶지만 오늘은 생략합니다. ㅎㅎ

 

 책을 읽다보면 대심판관(번역에따라 틀림: 대재판관, 종교재판소장이라고도 할 수 있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종교 재판이 가장 극성을 부리던 시대에 , 예수 그리스도가 홀연히 길거리에 나타난다.(종교적으로 이야기 하면 재림한거죠. 그리고 재판이라는 것은 공정해야 하기에 그 시대에 사람들이 가장 신임하는 사람을 재판관으로 세웠겠죠. 어떻게 보면 사람이 세운 예수님의 대리인인 겁니다. 그런데....)

“소리 없이 남의 눈에 띄지 않게 나타났지만, 모두가 예수를 알아보았고” “자기도 모르게 그에게 끌렸다.”

종교재판소장은 호위병들에게 예수를 잡아다가 감옥에 가두라고 명령한다.

감옥에서 종교재판소장은 예수를 심문하면서 자유와 공동체라는 불온한 생각을 파괴하는 원대한 사업을 하려는 “우리를 방해하려고” 온 것이 아니냐고 추궁한다.

또한 종교재판소장은 예수에게 우리는 네가 아니라 로마와 카이사르의 칼을 따른다고 말한다.

우리가 지상의 유일한 지배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 “약하고 미천한” 대중에게 “자유를 포기하고 우리에게 복종해야만 자유로와 진다는 것”을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대중은 소심해지고 겁먹고, 행복해 질 것이다. 그래서 종교재판소장은 '내일 너를 화형시키겠다' 고 말한다.

하지만 결국 종교재판소장은 마음이 누그러져서 ‘예수를 어둠이 깔린 도시의 뒷골목에 풀어주었다. 그리고 죄수는 떠나갔다.’

 

어쩜 이렇게 정확하게 보았을까? 

대단하면서도 가슴아프네요!! 200년 전의 소설 이야기가 과거부터 현재도까지 계속 되풀이 되니...

 

책 내용의 일부를 더 올립니다. 나의 피를 끓게 했던 두 문장입니다.

 

 

 <두개의 심연>

보통 인생에서는 서로 상반되는 두 사실이 충돌하면서 그 한가운데서 진실을 찾게 됩니다. 하지만 현재의 경우엔 그야말로 그렇게 되지 않는군요.

첫 번째 경우 그는 진정으로 고결했던 반면 두 번째 경우엔 그 못지않게 진정으로 저열했다고 하는 편이 타당할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건 바로 우리가 드넓은 천성을, 카라마조프적인 천성을 타고낳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저의 결론인바- 우리는 가능 할 수 있는 대립쌍들을 뒤섞을 수 있고, 또 한꺼번에 두개의 심연을, 우리들 위의 심연, 즉 드높은 이상들의 심연과 우리 아래의 심연, 즉 가장 저열하고 악취나는 타락의 심연을 관조할 수 있는 것입니다......<중략>.....

....두개의 심연, 여러분 두개의 심연을 동시에 관조할 것 - 이것이 없다면 우리는 불행하고 불만족스러우며 우리의 생존 자체가 불완전한 것이 됩니다.

 


< 친부살해 >

아버지를 죽인 건 그놈입니다. 형님이 아니라요. 그놈이 죽였고, 저는 그놈에게 죽이라고 교사했던 거죠...

아버지의 죽음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중략>.....

그것도 비열할 정도로 제정신입니다.

... ... ...


당신과 마찬가지로, 아니 여기 이 모든...낯...낯짝들과 마찬가지로!

그가 갑자기 청중을 향해 몸을 돌렸다.

“다들 아버지를 죽여놓고선 놀란 척 하고 있어.” 그는 분노에찬 경멸을 내보이며 부득부득 이를 갈았다.

“서로가 서로를 앞에 두고 모르는 척하고 있는 꼬락서니라니 거짓 말쟁이들! 다들 아버지의 죽음을 바라고 있어.

한 마리의 독사가 또 다른 독사를 잡아먹는 거야.

친부살해 사건이 없었더라면 다들 화를내며 성질이 난 상태로 각자 집으로 가겠지...”


영원히 반복되는 역사의 딜레마....

도스토예프스키는 어떻게 이렇게 시대를 표현할 생각을 했을까?

문학가와 예술가의 정신이 역사학자들보다 더 역사적이다 라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문학의 힘, 예술의 힘이란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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